인터뷰: The Rights Exposure 세월호 작업

홍콩의 인권관련단체 The Rights Exposure Project에 세월호 작업에 관한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Rights Exposure Project는 앰너스티 인터내셔널 출신 Robert Godden씨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문을 싣습니다.

Jindo: a lone buddhist monk prays for the victims at a make-shift altar.
2014년 7월, 진도 팽목항: 스님 한 분이 임시제단을 만들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 박준수

박준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그린피스 한국지부, 세이브더칠드런, 아시아소사이어티 코리아센터 등의 기관과 LA타임즈, 독일의 디벨트 지 등 다수의 매체와 작업을 해왔다. 그는 현재 2014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정의를 위한 싸움을 장기간에 걸쳐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이메일을 보내 박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프로젝트 “세월: 외면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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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학생들이 뛰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했을 안산 단원고는 시간이 멈춰있다. 꽃다발과 과자,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아이들의 책상을 장식한다.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325명의 학생 중에 생환한 학생은 75명에 불과하다. © 박준수

Q. 먼저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와 유족들의 정의를 위한 투쟁에 대한 당신의 기록작업에 촛점을 맞춰보자. 거의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작업을 해왔다. 처음 시작할때 당신의 예상은 어땠나? 이렇게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될 줄 알았나?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에 맞춰야 했나?

A. 처음에는 1주기까지 기록을 할 생각이었다. 1년 정도면 정부가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 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유족들도 어느정도 마음의 안식을 얻고 일상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렇게 오래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1주기가 지났지만, 공식적인 진상조사는 시작조차하지 못했다. 한 때 평범한 부모였던 유족들의 삶은, 처음에는 아이들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들이 정부의 방치와 기만행위라고 주장하는 일련의 행동들에 의하여, 송두리째 뒤집히고 말았다. 지난 1년 내내 유족들은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독립적으로 조사하라고 거리에 나가 시위를 했다. 하지만 이제 경찰은 그들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다. 유족들이 활동이 점점 사회운동단체의 성격을 띄게 되면서, 나의 접근방식은 달라져야했고, 작업의 테마도 달라지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세월호 부모님들을 시위와 충돌의 맥락안에서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게 세월호 참사가 진행된 방식이다.

Kim Hyun-dong, another father of a Sewol student victim Kim Da-young, looks pensively at mementos in his late daughter's room.
단원고 2학년 10반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씨가 다영이의 방에 놓인 유품을 바라보고 있다. © 박준수

Q. 유족들과 당신의 관계에 대해 조금 말해줄 수 있겠나?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다루는 주제는 워낙 조심스럽고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감정적인 부분들이 유족들을 촬영하는 당신의 접근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당신은 중립적인 관찰자라고 느끼나, 아니면 그들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느끼나?

A. 나와 세월호 유족들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내 입장은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들어 유족들을 기록한다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 역시도 그들의 고통에 숟가락을 얹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뉴스매체에서 유족들의 얼굴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자이크 처리되고, 희생자들의 숫자가 계량화되고 단순한 통계로 인식되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흐릿해지고, 멀어지고, 공감하기 어려워진다고 느꼈다. 참사에 사람의 얼굴을 부여하는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더 깊숙히 들어가야만 했다.

참사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아주 힘들었다. 안산의 정부합동분향소에 발을 딛는 순간, 촘촘히 세워진 영정사진의 규모에 압도되고 만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겹겹이 쌓은 부패와 무능 때문에 죽어갔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유족들과 신뢰를 쌓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카메라를 든 사람이나 언론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을 불신했다. 한국 언론과 유족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잘못됐다. 사고 초창기에 기자들은 유족들의 고통에 완전히 둔감했고, 그들의 행동은 무례했으며 비윤리적이기까지 했다. 나는 시간을 들여 부모님들을 하나씩 알아갔다. 그러면서 죽은 아이들에 대해서도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다. 세월호를 탔던 476명의 승객중에 304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250명은 수학여행을 떠났던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현재 약 150여명의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고, 아마도 그 중 100여분은 나를 알아볼 것 같다. 그리고 30-40분 정도와는 관계를 쌓고 인사를 나눈다.

April 2015, just a few weeks before the 1st anniversary, the government proposes the enforcement decree of the Sewol law, which undermines the very independence of the investigative committee. The Sewol families are outraged. Some 70 parents shave their heads in protest, and about 150 parents embark on a 2-day walk protest wearing mourning white dress and holding their children's funerary portraits. A victim's mother and sister lean on each other just before the march began.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한국 정부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시행령을 강행했다. 단원고 희생학생의 가족들은 항의의 뜻으로 머리를 삭발하고 안산에서 서울까지 1박 2일간 도보행진을 했다. © 박준수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면서 활동가냐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 꼬리표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정이다. 먼저, 한국의 미디어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보수 성향의 3개 신문이 70%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그 중 하나는 혈연으로 삼성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2개의 공영방송, 그리고 하나의 케이블 방송의 사장을 임명한다. 그리고 이들 방송국의 기자노조는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다가 각각 분쇄되고 말았다. 따라서, 정부가 여론을 장악하고 이미 소외된 사람들에게서 균형잡힌 보도를 박탈하기가 쉽다.

둘째, 내가 많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세월호 참사라는 주제와 지난 1년동안의 경험 때문에, 내 사진은 자연스럽게 훨씬 사적이고 감정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독자에게 중립적인 맥락을 제공하기 위해 캡션을 객관적으로 쓰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매체에 사진을 보낼때는 더 그렇다. 유족들이 겪고 있는 수모와 부당함이 아주 심각하기 때문에 나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감정적이 되고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감정들을 사진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Police barricade and Sewol families.
2014년 7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째. 약 2만여 명의 시민이 서울 시청광장에 모여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특별법 통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았고, 유족과 시민들은 폭우 속에 연좌시위를 벌였다. © 박준수

Q. 당신의 세월호 작업은 국제적인 매체를 포함하여 몇몇 매체를 통해 공개되었다. 포토저널리스트로서 당신은 그것(이야기의 전달)으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당신이(그리고 당신의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다고 생각하나?

A. 국제적인 매체에 사진이 실려서 좋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몇몇 온라인 매체와 소규모 매체에만 사진이 실렸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시장이 작다. 한국의 매체는 이미 자사 사진기자들이 있기 때문에 프리랜서와 일해본 경험이 적다. 더 많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소셜미디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1년이 지났지만, 세월호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고 아직도 아주 길고 복잡한 길을 가야만 한다.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는 정치쟁점화 되면서 여론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리고 유족들은 한국 정부와 친정부, 극우세력으로부터 엄청난 부당함과 수모를 겪었다. 불행히도 여론이 무관심해지면서, 정부의 방치는 더 심해졌고, 경찰의 폭력진압도 악화되었다. 정부가 지난 1년간 유족들을 대해 온 방식은 최악의 인권침해에 가까웠다.

시간의 문제일뿐, 타인의 고통은 대중의 의식에서 희미해지고 공감하기 어렵게 된다. 나는 유족들의 고통과 싸움을 의미있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세월호 참사와 공공안전에 대한 의식을 높일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나는 팀 마츠이(2015년 세계보도사진상 멀티미디어부분 수상자)의 접근방식을 존경한다. 나 역시도 이 작업이 사람들이 세월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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