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프레시안 – 세월호 ‘그라운드 제로’ 단원고

미국에서는 911테러가 발생한 세계무역센터 자리를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른다. 재난 현장을 일컫는 이 말은 ‘중심’이나 ‘원점’이라는 뜻도 있다. 세월호 참사의 그라운드 제로는 단원고 교실이 아닐까. 2014년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의 교실은 아이들이 졸업하기로 되어 있던 내년 2월까지만 유지된다.

단원고 교실에서 아이들을, 아이들의 흔적을 마주한다. 어느덧 봄이 왔고, 새 학년이 시작됐다. 10반까지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은 단지 2개 반이 되어 3학년으로 올라갔다. 325명 중 75명만이 살아 돌아온 2학년 교실은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만 같다. 무사 생환을 바라는 편지와 쪽지. 칠판을 뒤덮은 기도와 염원의 글귀들. 책상 위에 놓인 아이들의 사진과 꽃다발. 쉬는 시간이 되면 적막을 깨고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생존한 아이들은 남몰래 2학년 교실을 찾아 친구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거나 우두커니 앉아 있다 가곤 한다. 부모들은 아직도 사탕과 과자를 아이들의 자리에 가져다 놓고, 아이들의 흔적이 담긴 교실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하며 정성스레 가꾼다. 사고 초기부터 자원봉사를 해 온 안산시민 한 분은 매일같이 아이들의 생일케이크를 사 들고 단원고와 분향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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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교실. ⓒ박준수

 

세월호 유가족들은 매일 교실을 돌보며 아이들이 좋아할 과자를 가져다 놓는다.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여전히 오늘을 함께 살고 있다. ⓒ박준수
세월호 유가족들은 매일 교실을 돌보며 아이들이 좋아할 과자를 가져다 놓는다.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여전히 오늘을 함께 살고 있다. ⓒ박준수

 

단원고 아이들 100여 명의 유해가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에 안치되어 있다. 사진 속 아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다 보면, 얼마나 많은 꿈과 희망이 꽃피우지 못하고 세월호와 함께 스러졌는지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박준수
단원고 아이들 100여 명의 유해가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에 안치되어 있다. 사진 속 아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다 보면, 얼마나 많은 꿈과 희망이 꽃피우지 못하고 세월호와 함께 스러졌는지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박준수

세월호 사고는 거듭된 인재로 인해 참사가 되었지만, 수습되기는커녕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마음으로 실종자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분개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갈라서고 돌아섰다. 유가족들은 졸지에 죽음을 담보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로 멸시받았고, 연민은 경멸이 되었다가 증오로 변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 달라며 단식을 이어 가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가난하고 이혼했다는 이유로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딸을 향한 사랑과 아비의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내몰렸다. 누군가는 유가족들에게 ‘빨갱이’나 ‘관 장사’ 같은 언어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잊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세월호 참사는 무참히 잊히고, 우리 사회의 민낯과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오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반쪽짜리 특별법만이 통과되었을 뿐, 진상조사위원회는 아직 발족조차 하지 못했다. 정부의 철저한 외면으로 세월호 선체의 인양조차 불투명한 현실이다. 아직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실종자 9명의 가족들은 청와대와 광화문에서 인양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내가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는 이유는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으로 죄 없는 아이들의 삶이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마감되었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망각 너머로 아이들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면, 피해자 304명의 죽음은 헛되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참사가 반복되고 말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단절돼 버린 아이들의 꿈과 소망에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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